34주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 원인, 교훈. 최악의 원자력 사고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4년전인 1986년 4월 26일 새벽 옛 소련 연방인 우크라이나 지역에 있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며 역사상 최악의 방사성 물질이 다량으로 방출되며 심각한 물적, 인적 피해를 일으켰습니다.

체르노빌 참사는 틀림없이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였습니다. 1986년 4월 26일,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한 원자로에서 엄청난 폭발과 화재가 발생하여 전례 없는 수준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던 사고입니다. 등급도 가장 높은 7등급의 원자력 사고이며 후쿠시마 원전도 마찬가지 7등급이지만 체르노빌의 피해가 훨씬 컸습니다.

미드 체르노빌의 한 장면

사고는 수많은 직간접의 사상자를 냈으며, 그 장기적 영향은 광범위했으며 앞으로도 많은 미래 세대에게 과제와 도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연구들이 그 사고로 인한 심각한 건강 및 환경 문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그리고 러시아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갑상선 암의 급격한 증가를 발견한 것은 수많은 비참한 사례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 사고는 중국에서 비롯된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정부의 무능과 거짓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 일으켰으며 수많은 인류의 피해를 불러 일으켰는지 비교가 되는 시사하는 바가 많은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체르노빌 사고 개요, 원인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발생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원자력 재난으로, 폭발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불과 120km 떨어진 체르노빌 발전소 4블록에서 발생했으며 벨라루스와의 국경에서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발전소 중 하나였습니다. 실제 폭발은 여러 요인의 우연의 일치로 일어났습니다. 원자로가 업데이트된 보안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 외에 자동화 수준도 낮았습니다. 1986년 4월 26일 밤, 터보 발전기의 관성 범위를 시험했어야 할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에너지 출력을 핵 연쇄반응의 거의 정지상태로 낮춘 다음, 원자로 노심에 대한 냉각수의 정지와 함께 운영자의 에너지 출력이 갑자기 증가하여 연료가 과열되며 원자로 노심이 파괴되었습니다.

실험을 시작한 지 40~60초 후인 현지 시각 오전 1시 24분, 두 차례의 대형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일부 사고조사원에 따르면 원자로의 출력능력 증가와 함께 원자로의 활성구역에서 모든 제어봉을 떼어내 폭발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최초 폭발 당시 안전시스템이 정지되거나 가동 중단됐고 방사능 증기와 수소의 결합으로 원자로 덮개 1200t을 날려 지붕이 파괴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발전소 내부
폭발 사고 현장

몇 초 후 두 번째 폭발이 있었으며, 몇몇 독자적인 연구에 따르면 첫 번째 폭발은 정상인 화학적인 반면, 신속한 중성자가 연소하는 두 번째 폭발은 0.3 킬로톤(TNT 약 300톤)의 수율을 가진 핵폭발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첫 번째 폭발에 이어 붉은 불이 났고 두 번째 폭발에는 연한 푸른색 불이 났으며, 그 후 원자로 위로 버섯구름이 피어 올랐습니다. 명백한 원자력 사고였던 것입니다. 이 사고는 히로시마 핵폭발보다 400배 이상의 방사선을 누출시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고 이후 구소련과 유럽 상공에 방사능 구름이 날아갔으며 피해는 커져갑니다.

유럽지역 방사능 피해 지도

주 원인은 핵연료가 물을 증기로 바꾸는 열을 발생시키는 원자로 설계결함과 시설 내에서의 열악한 운영절차가 참사의 두 요인이었습니다. 여기에 관리자의 절차를 무시하는 독선과 관료주의가 더해진 것입니다.

체로노빌 원전과 책임자들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

그 사고에 대한 초기 반응은 영웅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긴급구조요원들은 원자로에 냉각수와 삽을 뿌리기 위해 희생했고, 결국 원자로가 콘크리트 석관에 갇히기 전에 핵반응을 둔화시켰습니다. 사고 대응이 계속되며 근로자들은 방사능 피폭 위험에도 시간을 제한해가며 출동했습니다.

최초 폭발 사고가 일어나며 현장에 화재를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했던 소방관들의 피해가 컸는데 그냥 화재가 아닌 살인적인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는 현장에 방호복도 없이 갔던 것입니다. 파편으로 떨어진 흑연에도 노출되는 등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불을 꺼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임무를 수행한 최초의 피해자들입니다.

가장 피해가 컸던 현장의 소방관들을 기리는 동상

당시 원전에 있던 기술진들도 적지 않게 피해를 입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는데, 소방관들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방사능 피폭을 입어 사망 시에는 처참한 몰골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방사능 누출 우려로 죽어서도 콘크리트로 덮여버리고 맙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무시된 채 방사능 폐기물이 불과한 몸이 되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밤중에 다양한 색상을 보여주며 일어난 폭발은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에게는 그저 좋은 구경거리였겠지만 이들 모두 피폭을 받아 생존자는 없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전이 있던 프리피아트 시의 전체 인구와 그 인근 몇몇 다른 마을과 마을의 주민 등 수십만 명은 영문도 모르고 피난했으며, 그 주변으로 출입이 통제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시 제외구역이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시 주만 소개령이 떨어진 이후 약 14일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하니 방사능 피해가 주민들에게도 그대로 있었을 것입니다.

소련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망자는 31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0만에 가까운 인명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떠나야 했던 이 도시는 지금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폐허가 되어 있으며 야생동물의 천국이 되어 있습니다. 동물 들이라고 피해가 없을 수 없겠지만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 없는 야생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땅 체르노빌

체르노빌 원전 사고 교훈

이 치명적인 사고는 중요한 교훈을 제시하였습니다. 체르노빌 시설에서 발견된 결함들은 전세계 유사 원자로들의 안전 업그레이드를 이끌었고, 다른 원자로들은 완전히 폐쇄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고로 인해 지구촌이 공동체의 운명이며 그 피해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마치 지금의 코로나처럼 말입니다.


당시 소련이 여러 날 동안 사고를 은폐하고 사고의 심각성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방사능 구름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안전기준을 확대하고 회원들에게 국제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사고를 신속히 보고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중국에서 발생된 코로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들도 은폐하고 오히려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의사를 체포하기까지 하는데 소련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학자도 소련 정부에 의하여 날조된 거짓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고 결국 본인의 목숨을 내놓으며 진실을 남기고 갑니다.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발레리 레가소프 박사

34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 이 재앙의 여파는 언제나 억제될 것인가? 체르노빌은 과연 안전할까? 하는 질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냥 원자로를 석관으로 덮어버린 것으로 안에 있는 원자로는 아직도 무시무시한 방사능을 내뿜고 있습니다. 밀봉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방사능 물질을 제거해야 하는데 아직도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합니다. 거대한 화약고를 지하에 그저 막아놓았을 뿐인데 다시 재앙으로 돌변할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폐허가 된 체르노빌

원자로 시설 주변의 방사선 수치는 너무 높아 적어도 수백 년 동안은 이 지역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호기심은 이 지역을 관광명소로 둔갑시키고 있는데 너무나 위험한 행동임을 제대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현재 진행형 사건입니다.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끝이 없는 재앙입니다.

죽음의 땅 체르노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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